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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잠깐의 휴식 후, 멀고먼 여행길로 들어섰다. 이미 비행기 일곱 시간, 그리고  이어 9시간 이상의 길을 봉고차로 이동한 경험이 있다. 봉고차 이동에 대해, 그리 거부감이 없는 듯 보였다. 닥치면 받아들이는 깨달음이었다. 지혜로운 여행자들의 마음자세였다. 3시30분쯤 출발한 우리 차량은 7시30분 현지에 도착했다. 지역통화를 둘러보는 일정이다. 차에서는 다들 열심히 잤다. 어두워져 도착한 현지. 이곳은 어디인가. 마을회관내지 커뮤니티 센터 같은 곳이려니 생각했다. 그곳의 어른 마당 같은 곳에 차를 세우고, 우리 일행은 두 개의 숙소를 배정 받았다. 현지 주민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게 됐다. 한 팀은 우리가 도착한 곳 길건너 편 현지인 집으로 이동했다. 또 한 팀은 차량으로 7,8분 이동했다. 마을길을 지난 도착한 집은 두 부부와 어린 남매가 사는 집이었다. 현지 마을 활동가 슈티마의 집이었다. 남편은 집에서 악세사리 조각도 하고 농사도 짓는 일을 했다. 집안에 작업실이 있었다. 집안에는 고양이가 네 마리나 있었다. 낯선 사람들로 아이들은 쑥스러워했다. 주인 일행은 2층에서 자고, 우리들에게 일층 전부를 내주었다. 2명이 잘 수 있는 나무 침대와 그 옆에 네 명 정도가 누울 수 있도록 침상이 깔려 있었다. 우리는 이곳에 짐을 풀고, 다시 원래 장소로 차를 타고 모였다.
 
시사아속은 평화로운 곳이었지만, 도시의 삶에 길들여져 있는 일행들에게, 그리고 여행의 또 다른 맛을 즐기고 싶은 여행자의 기대에는 2퍼센트 결핍이 있었다. 그것은 시원한 맥주 한 잔의 그 맛과 분위기였다. 저녁 식사시간. 그 토록 기다리던 맥주가 제공됐다. 근처 가게에 가서 급히 조달한 맥주였다. 손님맞이를 위해 나온 주민들이 마련해 준 저녁을 먹었다. 닭 국물이 속을 달랬다. 현지 음식에 적응을 잘하는 이들도 있었고, 여전히 고수향을 힘들어 하는 이들도 있었다. 필자는 후자였다. 음식을 먹기는 하지만, 고수향은 적응이 힘들었다. 맥주 한 잔을 들이키며, 분위기는 달아올랐다. ‘꿀맥’이었다. 긴장은 이완됐고, 우리는 국내 버전으로 뒷풀이 시간을 가졌다. ‘나그네’ 노래 한 곡조가 흘렀다. 국내 정치도 거론하고, 개인적인 경험도 들려주었다. 삶에, 역사에 대한 소회도 논했다. 갑갑한 한국 정치는 여행자들에게 여전히 불편한 무엇이었다. 대중들의 힘은 무엇이고, 또 대중을 농락하는 현실 정치는 무엇인가. 누구나 술자리 정치 이야기는 다 전문가들이고, 또 밤새는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연륜이 있는 이들이지 않은가. 적당한 경계, 울타리를 치고 다시 ‘화두’로 돌아온다. “시사아속 원동력은 무엇인가. 바로 나를 버리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믿을 만하다.” 그리고 세월호 이야기로 향했다. “시민사회가 이렇게 무력할 수 있는가. 세월호 사건은 시민사회가 새롭게 생긴 것이다...” “새월호 사건에 대처 하는 우리 시민사회, 정치권에 대해 평을 해본다. 지역으로 향한다는 것, 귀농한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귀농의 현실, 농촌의 현실은 또 어떤가. 귀농자들의 정착이 그리 만만치 않다. 60년대와 같이 가난하지 않으면, 자발적 가난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없이는 공동체 이루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황폐한 농촌에서 귀농이 새로운 재편의 시초로서는 의미가 있지만, 대단한 무엇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경계해야 하고, 과장일 수 있다.” 시간은 깊은 밤으로 흘렀다. 9시 40분, 일정을 정리했다. 7시 기상, 8시 이곳에 모여 아침 식사를 한다는 다음날 일정을 안내 받고 각자 숙소로 향했다. 

6명의 일행은 슈티마의 집에서 묵었다. 고양이들의 사람을 잘 따라 와서 부비는 것은 예사이다. 슈티마의 남편 까이는 낼 새벽 거위들이 시끄럽게 울 수도 있지만, 놀라지 말란다. 어둡고, 지친 하루여서 그 말의 의미를 흘러 들으며, 일행들은 연장자 순으로 샤워를 했다. 집안에서의 샤워는 편했다. 시사아속에서의 샤워는 샤워기와 화장실이 같이 있는 공동 세면실에서 가능했다. 일행들은 각자 세면, 샤워를 한 후 편안하게 잠자리에 누웠다. 개인적으로 외국에서의 홈스테이는 처음이었다. 시사아속 공동체 체험도 처음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새로운 첫 경험이 많다. 신기했다. 타이 고양이가 우리 일행의 발등을 부비며, 이리저리 다니는 것도 신기했다. 이 곳 동물들의 팔자가 좋은 것은 알았지만, 개인적으로 고양이와 친해 본 일이 없는데, 고양이와 가까이 지내니 마냥 신기했다. ‘낯선 공간, 낯선 시간 속에 있다. 행복한 시간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시간들이다. 물끄러미 내 옆에 있는 고양이를 응시한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난, 어쩌면 사람들이 두렵다. 이 집 주인이 그렇듯, 이 곳 고양이들이 먼저 마음을 열고 환대한다. 먼저 다가와 손을 내민다. 또 다른 고양이 한 마리도 누군가의 품에 안겨 있다. 집 주인들은 이층에 있다. 2층은 티비를 켜 놓아, 1층은 편안하다. 하루하루가 길고 편안하다. 23일 목요일. 공동체는 물리적 공간, 자급이지만, 도시의 공동체는 마음과 마음의 유대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도시의 삶에서 네트워크로 초대하고 나누는 환대의 공동체. 각 자의 사회적 조건들은 힘들 수 있지만 그 마음을 지지하고 위로하며 환대의 끈으로 연대하는 공동체를 생각해본다.’ 잠들기 전, 가볍게 걸친 맥주 한잔이 가벼운 상념에 빠지게 했다. 아소톤에서 1박, 3일차 숙박이다.

10월24일(금) 4일차다. 어제 새벽처럼 5시를 넘긴 어느 시간에 잠이 깼다.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5시50분. 그 전에 까이 말대로 거위소리가 시끄러웠다. 닭소리도 들렸다. 주인들도 하루를 일찍 시작했다. 마을방송 소리도 들렸다. 어젯밤과 달리, 새벽에는 집 주변이 보였다. 이 집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모양인지. 우리가 잠을 잔 방 옆은 바로 작은 저수지였다. 문을 옆면 집 밑으로 거위들이 지나다녔다. 집은 밖과 통했다. 나무 벽이지만, 벽 상단은 바깥과 통하게 돼 있어, 날 벌레들이 얼마든지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잠든 사이 집 안으로 반딧불이가 들어와 어두운 공간을 돌아다녔단다. 얼마나 근사한 광경인가. 우리가 묶은 침대 밑에서는 전갈이 들어왔었단다. 새벽에 쫓아냈단다. 이는 또 얼마나 아찔한가. 하룻밤 사이에 여러 에피소드가 생겨났다. 자리에서 일어나 마을길을 가볍게 걸었다. 전형적인 시골 농가의 마을길이 지평선으로 이어졌다. 양쪽에는 벼논이 양껏 펼쳐져 있다. 마을길 거리에는 집집마다 개들이 쏟아져 나와 주인장 행세를 하고 다녔다. 우루루 닭들도 자유롭다. 적응되지 않는 현실이지만, 살짝 가슴조리며 마을길로 나아갔다. 한 명의 일행과 함께. 마을 규모에 비해, 크고 아담한 사원이 있었고, 주민들이 사원으로 향했다. 어슬렁거리는 개들을 지나, 사원 마당에 들어섰다가 더는 나아가지 않고 되돌아 왔다. 아침 기도를 드리는 마을 주민들의 고요한 시간을 이방인들이 방해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일행들은 세면도 하고, 휴식을 취하며 아침을 맞이했다. 잠시 짬을 내 저수지 주변도 산책했다. 슈의 아들 할림과 딸 아리가 저수지에서 낚시를 하고 있다. 일행들은 신기하게 아이들을 바라봤다. 까이는 자녀들을 위해 저수지 위에 낚시를 할 수 있도록 나무로 설치물을 만들어 주었다. 무척이나 목가적인 풍경이다. 모든 아이들이 부러워할 풍경이고, 모든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마련해주고 싶은 동심의 한 모습이었다. 저수지 주변 산책길은 아이들에게 숲 놀이의 명소였다. 마당의 나무에 껑충 뛰어올라 나무를 타는 남매의 모습은 동화책 속의 그림이었다. 너무 부럽고, 집에 두고 온 아이에게 미안했다. 도시에서 자연을 모른 채 살아가는 모든 아이들이 안타까웠다. 슈티마 집과 주변에서 한가롭게 아침시간을 보낸 후, 일행은 8시에 맞춰 식사장소로 이동했다. 옆집 일행들은 지난밤을 어떻게 보냈을까? 그 집에는 원두막 같은 사랑방 공간이 있어, 그것에서 밤늦게까지 한담을 나눴단다. 짐에 넣어온 다기에 참도 끓여 제공하고, 맥주도 한잔 더했단다. 얼마나 이야기꽃을 피웠을까. 어쨌든 일행들은 반갑게 서로를 맞이했고, 아침식사를 했다. 아침 메뉴는 흑도미였다. 민물흑도미였다. 현지어로 ‘빠능’이다. 함께 나온 어장에 찍어 흑도미를 입에 넣었다. ‘빠’는 생선을 의미한다고 누가 팁이다. 흑도미는 논 농사에 활용된다. 

아침식사 후, 일정 안내를 받은 후, 쿠춤지역의 조직, 활동과 지역통화 ‘비아’에 대한 소개를 받았다. 9시부터 시작됐다. 식사를 했던 그 공간에서 이어서 시작했다. 자신이 집을 숙박으로 제공한 슈티마가 쿠춤에 대해 소개했다. 이 마을의 원로이자 리더인 슈포만은 잠시 와서 인사를 하고, 저녁에 만나자며 얼굴 인사를 했다. 이 마을 정미소 매니져로 일하는 슈티마는 우리 일행에 대해 먼저 소개를 받자고 제안했고, 서로 인사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 슈는 쿠춤에 대해 소개했다. 과거로부터 많은 활동, 경험을 해왔다. 

쿠춤은 각자 생산한 농산품, 비누 등을 판매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쿠춤은 도심에서 멀기 때문에 상인들이 비싸게 파는 물건을 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직접 물건을 만들어 보자는 고민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저렴한 물건을 비싸게 파는 상인들의 문제점을 인식했고, 스스로 문제점을 극복해 보자고 했다. 그래서 주민들이 돈을 모아 필요한 물건을 한 사람이 공동구매로 사왔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의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했는데, 외부에서 약을 사와 먹었지만 효과가 없었다. 건강이 나아지지 않아 의사를 초빙해서 같이 고민하기도 하고, 자연에서 얻는 재료로 직접 약을 만들게 되었다. 천연약재는 방콕의 NGO와 불교 종교계, 보건당국, 조직된 주민이 네트워킹을 통해 만들고 있다. 지금 야소톤 주에 11개 마을 조직, 800가구가 함께하고 있는데, 이를 쿠춤이라고 한다. 이중 300가구가 농약을 쓰지 않고 유기농으로 재배하고 있다.이들이 모여 건강이 나빠지는 원인을 찾기 위해 논의를 시작했다. 환경인가? 무엇인 문제인가? 땅 문제였다. 생선도 피부가 상했다. 5명이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지었고 건강을 회복했다. 건강을 헤치는 원인이 농약, 화학성분 때문이었다. 하지만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일본의 후쿠오카의 NGO와 함께 고민을 했다. 화학비료, 농약이 문제라는 확신이 생겼고, 천연퇴비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5명으로 시작했다. 당시 정부에서는 화학퇴비, 농약을 적극 권장하는 분위기였다. 25년전 상황이었다. 5명의 건강은 좋아졌지만, 수확량은 줄어들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후 홍보를 시작했다. 사람들과 그리고 4개 네트워크가 교류했다. 농사법, 약초/천연치료 등도 공유해갔다. 이제는 유기농으로 생산된 쌀을 누가 먹을 것인지, 즉 유기농 생산쌀의 소비 문제가 부각됐다. 그래서 정비소를 짓게 됐다. 땅을 살리고, 몸, 건강, 환경을 살린다는 의미를 담아 ‘촘록락 탐마차“라는 이름의 정미소공장을 지었다. 정미소 짓는 일은 어려웠다. 방법도 지원도 부지도 없었다. 그러나 해야 한다는 절실함만 있었다. NGO 지원기금, 마을조직에서 기금을 출연했다. 나무를 구하고 지붕을 지었다. 그렇게 작업이 시작됐다. 정미소 관리운영을 위해 엔지오와 함께 다른 지역의 정미소를 견학하기도 했다. 130여명이 관심을 갖고 참여했다. 정미소의 목표는 생산된 쌀을 상품화하는 것이었다. 무농약 쌀을 국내 판매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다 못 팔았다. 그래서 엔지오와 손잡고 해외 판매도 추진했다. 해외 판매를 위해서는 유기농인증 품질조사를 통과했다. 현재 스위스, 벨기에, 독일 등에 유럽에 연간 250톤 정도 수출하고 있다. 태국 국제 엔지오인 그린넷이 도와주고 있다. 그린넷은 쌀 품질관리를 맡고 있다. 쌀 가격은 정부 가격도 있지만 주민들이 모여 논의해서 판매가격을 정하고 있다. 

지역화폐인 비아에 대해서도 설명하였다. 1비아는 1바트이다. 비아는 묘목을 뜻한다. 묘목을 심어 그룹화, 조직을 만들어 낸다는 의미다. 공동체를 심는다는 의미다. 1, 5, 10, 20, 50비아가 있다. 지역화폐 비아 지폐에는 쿠춤지역의 문화, 생활을 그림으로 그려 표현했다. 사원에 있는 동자승들이 그린 그림이다. 공덕을 쌓는 내용이다. 제프 멜로라고 하는 캐나다 단체에서 와서 자립기술, 지역화폐 기술을 전수했다. 쌀을 판 수입으로 지역에서 필요한 물품을 지역에서 구매했다. 정부 돈의 잇점은 무엇이고, 문제점은 무엇인가. 농촌은 돈이 적고 빚을 지고 채무는 점점 커졌다. 그래서 돈을 빌리고 빚을 지는 상황을 막고자. 공동체 내 교환시스템을 만들고 싶었다. 비아를 통해 물물교환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었다. 비아는 회원 간 거래 시스템이다. 주민들의 생산과 판매를 증대하기 위해 비아를 쓴다. 한 사람에게 주는 비아는 500비아로 제한하고 있다. 일정선 비아를 보유하도록 했고, 생산을 통해 일정 비아를 보유하도록 했다. 그런데 정부가 개입했다. 정부는 쿠춤지역이 돈은 없는데 어떻게 먹고 살만한 것이냐고 했다. 비아는 무엇을 위해 쓰냐고 물었다. 실제로 비아를 사용하는 회원들의 가계 조사를 해서 실상을 파악했다. 정부가 감사하고 평가한 것이다. 비아는 쿠춤지역의 주민 삶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됐다. 쿠춤 공동체 간 거래는 비아로만 했다. 바트은 보유하고 외부거래에 사용했다. 지금은 비아를 사용하지 않는다. 아침 시장인 그린 마켓도 바트로만 거래한다. 지금은 생산량도 커졌고, 시장을 통해 해결하고 있다. 그린마켓은 유기농 제품 거래시장이다. 시장검사위원회가 있어 유기농인지, 직접 생산인지 검사한다. 비아거래는 지난 2006년 정부에서 사용 허용했지만, 이미 그 전에는 금지했다. 쿠춤 사람들은 과거 라오스에서 내려온 이산종족 사람들이다. 태국정부의 지역화폐 개입은 쿠춤의 사람들을 위축시켰고, 비아 또한 위축됐다. 주민들은 모여 더 이상 비아를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결의했다. 지금은 비아를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교환시스템이 변한 것은 없으며, 그린마켓을 통해 실현하고 있다. 그린마켓은 도심지에 5개 시장이 운영되고 있다. 각 시장마다 조직이 결합되어 있고, 한 시장 당 10~20가구 정도가 참여하고 있고, 하루씩 돌아가면서 운영되고 있다. 쿠춤마을위원회는 15명으로 운영되고 있다. 농업과 농업 외 문제에 대해 발전방안을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있다. 목표를 위해 무엇을 할지 활동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농업에 대해 주로 논의한다. 벼농사, 채소, 가축 등 생산품 등에 대해 계속 논의한다. 생산과 판매는 가족 부양을 우선하고 남은 것은 판매한다. 

오전에 쿠춤지역의 마을활동과 지역화폐 비아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비아쿠춤 지역화폐가 현재도 활발하게 가동되고 있을 것이라 기대했는데, 이미 오래 전에 정부의 개입, 탄압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됐다는 소식은 안타까웠다. 쿠춤지역 주민들은 정부의 개입에 맞서 돌파하기 보다는 화폐 사용을 접고, 대신 그린마켓을 통해 뜻을 이어가고 있었다. 공동체 시장인 그린마켓은 쿠춤지역의 생산자 네트워크에서도 유기농 농사를 짓는 이들의 거래망, 운동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12시에 식사를 하고 오후2시까지 휴식을 취했다. 점심시간에 인상적인 모습은 슈의 어린 딸과 그 보다는 한 두살 정도 더 위인 듯 보이는 동네 언니였다. 이들은 우리가 식사를 하는 중에, 컵에 쥬스를 따라 서빙을 해주었다. 그 모습이 예뻤다. 자연스럽게 공동체 안에서 어른들의 일손을 거드는 것이 과거 우리의 시골 모습을 닮았다. 오후 일정은 2시부터 진행됐다. 점심 후 한 시간 정도 휴식 시간은 더운 날씨 탓인지 대부분 일행들은 근처 숙소로 들어갔다. 난 마을센터에 남아 휴식을 취했다. 오후에는 마을을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슈가 매니저로 일하는 정미소를 먼저 방문했다. 일행들은 입구에서 모자를 받아, 각 자 하얀모자를 썼다. 머리카락이 떨어지는 것을 막고자 함이다. 쌀을 실은 차량이 무게를 재는 저울 위를 지났다. 벼 저장소를 먼저 들렀다. 각 농민들의 생산한 쌀이 모이는 것이다. 벼 자루에는 생산자 이름, 소속 조직, 날짜 등이 적혀있다. 정미소는 24시간 가동 기준으로 60톤 가공이 되는 규모이다. 농민들이 벼를 싣고 오면 수분은 14퍼센트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도정률은 30~50퍼센트이다. 그 중 부러진 것은 20퍼센트 정도 된다. 이것은 가축 사료로 상용되기도 하고, 그 나마 좋은 것은 가루로 해서 상품화한다. 정미소는 쌀 생산량을 높이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다. 정미소는 마을의 조직 소유이다. 우리가 방문할 당시 정미소에서는 작업이 한 창이었다. 16명 정도가 4개 공정에서 작업을 했다. 정미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전체 37명이다. 선별작업에 20명, 도정공정에 10명, 관리에 7명이다. 날씨가 더워 정미소를 둘러보고 설명을 듣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사오십분 정미소를 둘러 본 후, 일행들은 햇빛을 피해 정미소 벽화 옆에 모였다. 벽화 그림은 마을의 전경을 표현한 듯 했다. 그림 한켠에 아소톤 생산품물에 대한 국제유기농인증 마크가 눈에 띠었다. 정미소 시설의 규모는 거대했다. 정미소는 마을의 상징처럼 보였다. 

오후3시 모든 일행은 슈의 집으로 이동했다. 그동안 여행의 피곤이 몰리는 시간대였다. 일행 모두가 지쳐 보였다. 더운 날씨 탓이 컸다. 진행팀에서 무언가 의논을 했다. 일행은 이삼십분 거리에 있는 아소톤 시내 마사지센터로 이동했다. 마사지센터가 문을 닫기 한 시간 전이라, 일행은 간신히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이곳은 전문적으로 운영되는 곳으로 시설도 아담하고 깨끗했다. 또한 쿠춤에서 생산하는 약재를 맛사지 용품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주최 측의 배려로 일행은 잠시 한숨을 돌렸다. 한 시간 마사지를 받고 일행은 다시 마을센터로 이동했다. 저녁 식사를 하고, 그린마켓에 대해 안내를 받았다. 슈는 내일 오전에 시내 그린마켓을 방문하게 된다며, 간단하게 소개했다. 그린마켓은 채소, 과일, 천연약재를 판매하는 시장이다. 내일은 10명 정도 농가들이 참여할 예정이다. 음식은 다양하지 않을 수 있다. 생선, 닭, 게로 만든 음식들이 있다. 대나무 속 밥, 바나나와 코코넛을 넣어 만든 찰떡, 닭, 게, 개구리, 생선들이 판매된다. 날것도 있다.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다 이웃사촌이다. 팔러 나온 사람들 간에 물물교환도 가능하다. 비닐봉지나 플라스틱 봉지를 사용하지 않는다. 면 봉지를 사용한다. 2년 전부터는 소비자들이 생산지 방문도 한다. 그 전에는 ‘농약을 친 것 아니냐’하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생산지를 보여주게 되었고, 그 이후에는 반가운 관계를 형성하게 됐다. 소비자들이 또 다른 소비자를 불러온다. 건강에 관심있는 소비자, 운동모임 소비자들이 와서 사간다. 5개 시장이 교대로 열린다. 언제 열리는지 시장에 와서 정보교환도 한다. 소비자들은 매일 열러달라고 요구하는데, 생산량이 부족해 부응하지 못한다. 3-5일치 양을 사가는 사람들도 있다. 

슈의 그린마켓 소개에 이어 이 마을의 촌장인 슈포만 위원장이 왔다. 슈 위원장은 슈의 친정 아버지이기도 했다. 슈포만 위원장은 낮에 회의로 인해 짧게 인사한 후, 저녁 시간에 모든 일과를 마친 후 다시 일행을 찾았다. 슈포만 위원장은 이 공동체를 시작한 사람으로 인자한 표정에 조용한 성품의 소유자처럼 보였다. 조용하고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분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시사아속의 스님처럼. 농사꾼이다. 농사, 가축 사육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중요한 회의가 있어 늦었다. 땅을 서로 차지하려고 하는 분쟁이 있었다. 정부 측에서도 왔다. 조정회의였다. 늦은 점 양해를 구한다. 개인주의가 있다면 협력하는 마음이 있다. 발전되고 도시화되면서 개별화되고, 젊은이들이 도시로 가고 농촌에는 노인들만 나았다. 한국이 겪는 문제와 비슷하다. 우리의 목표는 우리의 먹거리, 우리 지역의 땅을 되살리는 것이다. 한국의 미래, 농촌에 사람이 있을까? 과거 유럽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화학비료, 농약의 오염으로부터 땅과 작물을 살리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유기농, 친환경 농사를 공유하고 싶다. 20여년 전부터 자연농업을 공부하고 조직하며 농촌 살리기를 끊임없이 해왔다. 그 결과 여기까지 왔다. 이곳지역은 일모작 농사를 짓고 있다. 태국의 다른 지역이 3모작을 하지만, 이 지역은 비가 많이 안 내려 물이 부족하다. 위치상으로 태국의 중심부이다. 1라이에서 보통 350킬로그램을 생산한다. 다 먹지 않고 판매한다. 우리는 가난해도 먹을 건 충분하고, 남은 것은 내다 팔아 필요한 것은 보충한다. 우리는 부자가 될 수 없다. 먹을 것은 있어야 한다. 비가 오지 않는다면 쌀을 비축해 공동체가 먼저 먹는다. 자립해야 한다. 2006년 이전 비아에 대해 아쉬움이 많다. 부자는 안 되겠지만 우리끼리는 충분하게 먹고 살 것이다. 

슈포만 위원장과 대화 시간을 마치고 일행은 준비해 온 선물을 전달하고 기념 촬영을 했다. 이미 밖은 깊은 어둠 속이었다. 내일 새벽부터 일정이 시작되므로 미리 전날 인사를 한 경우였다. 아소톤 쿠춤지역을 둘러보며 한국에서 생협 생산자 모임을 떠올렸다. 홍성이나 아산지역 등 농촌을 살리고 땅과 농민을 살리려는 활동을 떠올렸다. 자립적인 시사아속 공동체, 영성을 보며 어떤 영감을 얻듯이, 쿠춤지역의 농촌활동도 무농약 농사를 짓고, 보급하며 농촌지역의 자립기반을 확보해가는 노력과 철학을 엿볼 수 있었다. 어디를 가던 올바른 가치를 추구하고, 대안을 찾아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이었다. 우리 일행은 슈포만 위원장과 인사를 한 후, 숙소로 이동했다. 쿠춤지역에서의 밤도 벌써 이틀째이다. 내일 새벽에도 어김없이 거위들이 시끄럽게 울 것이다. 혹시 침대 밑에서 다시 전갈이 나타날까. 상념도 잠시, 누우면 잠든다. 낯선 이국땅에서의 여정은 마음과 달리 몸은 고되게 느끼는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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